성령님에 대하여! 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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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님이 임하심: 어떤 모양으로? 설교자 김환곤 목사
    성령님의 임하심: 어떤 모양으로?  그분의 존재(Being) 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역(Work)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궁금한 점들이 참 많습니다. 성령님이 언제 임하시는가? 임하시는 조건이 있는가? 어떻게 임하시는가? 어떤 모양(양태)으로 내재하시는가? 인간의 영과는 어떻게 교통하시는가? 인간은 성령님을 어떻게 느끼는가?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능력은 어떤 것인가?  오늘은 성령님의 임하심의 형태(양태)에 대해서 나누려고 합니다. 성령님은 내게 어떻게 임하실까? 다른 사람들에게도 임하고 계시는데..., 또 성령은 온 우주에 충만하시는데..., 어떤 성도는 성령님이 한 단일체의 형태로 내 안에 쑥 들어 와 계시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은 성령님을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그 능력을 부리는 것 같은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성령님께 역사해 주시라고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정리가 안 된 상상들을 하면서 혼란 가운데 있고, 또 어떤 분은 생각을 뒤로 미루는 분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에 대한 이해(컨셉)의 차이는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이해하는 데에도 오류가 발생하는 원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성령님을 인간에게 역사하시는 경험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에 대해서 인간인 우리가 처음 들은 곳은, 창세기 “하나님의 신(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는 말씀에서 입니다. 하나님이 온 우주와 만물을 다스리시니까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계셨죠. 이 창세기의 말씀은 우리가 성령님을 이해하는 데 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에 나오는 성령님에 대한 말씀들은 인간이 경험하는 사건과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는 것이죠.  창세기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영이 지구의 수면에 운행하고 계셨고 그때 인간도 창조되었습니다. 그때 에덴 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었습니다. 신약시대의 용어로 말한다면 그들은 성령 안에 있었고 성령의 교통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죄가 없던 때이니까요. 그럼, 이때 아담과 하와에게는 성령님이 어떻게 임하고 계셨을까요? 그리고 지금 여러분은 자신에게 임하신 성령님을 어떻게 그려 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영이 온 땅에 충만히 역사하시면서 내 안에 까지 그 영역을 넓혀서 역사하고 계신다는 그런 그림이 그려지나요? 마치 그 옛날 로마가 온 유럽을 지배하고 유대 땅까지 통치할때, 로마의 통치력이 유대에 까지 뻗힌 것처럼 말이지요. 그때 유대인들이 로마가 내 안에 있다고 말하지는 않았겠지요. 또 다른 예를 들면, 만일 여러분이 태평양 한 가운데에서 빈 병을 물속에 넣었다고 할 때, 그때 병 입구를 막고 넣으면 그 병 속에 물이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겠지요. 그러나 입구의 마개를 열면 병 밖의 물이 병 속으로 들어가서 병 속이 병 밖에 있었던 물로 가득하게 됩니다. 태평양에 가득한 바닷물이 그 병 안에 까지 들어온 것이지요. 이때 병이 주장하기를 “태평양이 내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의미로는...? 이미지적 표현으로는...? 시적인 표현이라면....성령님은 인간이 죄를 품고 있을 때는 임하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온 땅에 성령님이 충만히 역사하시고 계셔도 죄 있는 인간에게는 임하지 않으십니다. 입구가 막힌 병과 같은 상황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해 주셨다는 것을 이해하고 믿으면, 그 사람은 죄가 없다는 인정을 받게 되고, 그러면 성령님이 그 사람에게 까지도 임하십니다. 막힌 입구가 열려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영역(범위)이 나에게 까지 확장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신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고 표현합니다. (고린도전서 12:13)그래서 성경에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 기록합니다. (고린도전서 12:11)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딤후1:14) 할렐루야! 지금까지 성령님이 인간에게 임하시는 모드(양태)를 그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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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그런 일이! 설교자 김환곤 목사
    그때 그런 일이! [성령님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알고 또 어떻게 알고 있는가?] 오늘의 주제는 바울의 행동을 통해서 성령님의 활동(역사)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먼저 내용을 요약하면, 초대교회 때 유명한 예언자 아가보가 바울을 찾아와서 “성령이 말씀하시되” 하면서 예언을 하였는데, 바울이 그 예언을 무시한 사건입니다. 그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 보겠습니다. 초대교회 초창기 때,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지 약 25년쯤 되는 때 입니다. 그 당시에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있었는데, 초대교회에서 유명한 예언자로 10년이상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근처 가이샤라 항구에 도착하여 전도자 빌립의 집에서 머무르고 있을 때 그 유명한 아가보 선지자가 바울의 숙소로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허리띠를 풀어서 자기의 손과 발을 꽁꽁 묶더니,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 예언을 듣던 바울의 동료들은 모두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눈물로 막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유명한 예언자이고, 10년전에도 그가 예언을 하여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AD. 45-46) 때에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어서 다른 지방의 성도들이 후원 물자를 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가보가 하는 예언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위험에 처할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출발해서 중간 중간에 숙박을 위해 머무는 곳에서도 바울을 찾아온 그 지방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바울을 위해 예언을 하였습니다. 즉 예루살렘에 가면 결박과 환난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그 유명한 예언자 아가보가 찾아와서 이 예언을 하니 바울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바울은 그때 사명감에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고 불길한 예언들만 듣고 있었습니다.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또 주변의 동료들이 울면서 막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결국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진행되는 일들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다른 사도들도 만나고, 이방 땅 여러 곳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전하는 사역보고도 하고,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도 드리고 7일간을 순조롭게 보내며 예루살렘에 온 그의 목적을 완수했습니다. 그런데 7일 오후쯤 되었을 때 갑작스럽게 상황이 돌변하였습니다.아시아(지금의 터키)에 살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는데, 성전에 있는 바울을 발견보고 오해를 하여 바울을 잡으라고 소동을 일으킨 것입니다. 요약하면, 바울은 잡혀서 구타를 당하며 성밖으로 끌려가 유대 종교법에 따라 죽을 위기에까지 처했고, 이 소동을 진압하려는 로마 병사들이 달려와서 소동의 원인으로 보이는 바울을 쇠사슬로 묶어 데리고 가니, 유대 군중들은 따라오며 죽이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습니다. 아! 참으로 바울에겐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마 주님에게 ‘성도들이 예언하던 일이 저에게 닦쳤습니다. 주님! 주장하시옵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옵소서’하고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담대히 로마 병사의 천부장에게 요청을 하여 유대 군중들 앞으로 다가갔고 그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은 유대공회 앞에서 유대의 지도자들과 현재의 문제를 놓고 신앙적으로 논쟁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아가보의 예언대로 결박을 당하였고 환란을 겪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날 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 예수님께서 바울을 찾아 오십니다. 그리고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의미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주님의 일을 증거한 것은 잘한 것이고, 로마에까지 가서 거기서 또 주님의 일을 증거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아! 바울의 가슴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으로 가득찼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한 성령의 영감을 받았는데 사람들은 왜 반대되는 행동을 한 것일까? 이 문제는 또한 오늘 날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성령님은 절대로 다른 내용을 계시해 주신 것이 아닌데, 성령님의 계시는 예수님의 뜻을 따라서 주신 것인데, 신앙이 좋은 그들은 왜 바울을 못 가게 막았을까? 그것도 눈물을 흘리며 막았을까? 바울의 결정이 옳았는데, 예수님의 뜻이었는데. 사람들은 왜 막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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